2020년 10월부터 정말 간절히 작성하고 싶었던 글이다.
1년 여간 엄청났던 스트레스에 밤 잠을 설치고 머리가 빠져가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폭폭 내쉬었던 나날들이었다.
2021년 회고록
2020년 9월, 첫 정규직 입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홀로 운영 업무를 진행했던 해였다.
SQL을 제외하고는 업무를 하며 개발자로서의 역량을 많이 키우지 못했는데,
시스템이 협력사 솔루션 범벅으로 구성되어 있어 무언가 깊게 알아보려고 해도 협력사 측에 따로 요청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사의 시스템을 운영하는만큼, 여러 부서의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커뮤니케이션적인 부분에서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하여튼, 그래서 회고록 파트에서는 개발적인 부분에서 그다지 작성할 것이 없다.
대신 취업 사기(?)를 당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입사하자마자 이직을 결심하게 되고,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풀고자 한다.
취업 사기(?)
내가 현재 재직 중인 회사와 팀은 이 블로그의 취업 준비 글들과 Notion 이력서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숨기지는 않겠다.
2020년 상반기, 나는 CJ올리브네트웍스라는 회사에서 올라온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DT DevOps Engineer'라는 직무의 수행업무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Live Commerce 서비스 개발 및 Kubernetes 패키징'이라는 업무 내용과 도메인이 내가 생각하고 계획해둔 개발자 커리어와 부합하여 해당 직무로 지원했다.
1차 면접에서는 (지금은 다른 팀으로 가신) 현재 내가 속해 있는 부서의 팀장님과 라이브 커머스 팀의 팀장님이 면접관으로 들어오셨다.
나와 같이 면접을 보았던 지원자 분도 당연히 라이브 커머스 수행 업무를 보고 지원했고, 면접관님들의 질문에 답하며 우리 둘은 라이브 커머스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여기서부터 좀 이상했다.
팀장님 한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니, 왜 지원자들이 다 라이브 커머스 이야기만 하지?'
당황했지만 채용 공고에 그렇게 올라와 있다고 말씀드렸고, '엇, 인사팀에서 채용 공고를 누락해서 올렸네'하고 넘어가셨다.
여차저차 나를 포함한 세 명이 해당 직무로 최종 합격했고,
'내 뼈는 CJ에 묻는다'는 마음으로 입사하여 한 달여간 그룹 및 계열사 교육을 받고 부서 배치를 받게 되었다.
어디로? 'AI팩토리팀'으로..
진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출장이 잦고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제조업은 취업 준비할 때도 패스했던 도메인이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런 대참사가 일어났는지 영문을 모르겠던 중, 부서 배치 며칠 전 진행되었던 '부서 배치 면담'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면담에서 인사팀 분께서는 사실 라이브 커머스 팀의 TO는 최대 2자리이며, 한 명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취업 성공에 들떠있고 신나 있던 나는 아래처럼 호기롭고 패기롭게 외쳤었다.
'저는 라이브 커머스가 아니어도 일반적인 IT 서비스를 하는 곳이면 좋습니다!'
왜냐하면 라이브 커머스 팀이 있던 부서에 pg 모듈, 결제 등 담당하는 팀도 있었고,
설마 제조업을 하는 팀이 그러한 IT 서비스 부서에 묶여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해서 제조업 쪽은 기피한다고 언급할 생각도 못했다.
진짜 똥을 한 무더기로 씹은 얼굴로 팀원 분들과 첫인사를 하고 코로나 덕에 쓰고 있던 마스크에 고마운 마음이 들며,
배정된 자리에 앉아 오전 오후 내내 멍 때리고 고민했다.
결국 퇴근 시간이 다 되었고 각 신입 사원에게 배치되었던 팀 내 멘토님에게 현재 내 상황을 오픈하고 조언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면담, 면담, 그리고 면담
다행히 멘토님께서는 내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시며 아래 두 가지 선택지를 주셨다.
(1) 팀장님에게도 오픈하여 최종적으로는 인사팀과 컨택을 취해 팀 옮기기
(2) 2-3년 정도 버티다가 사내 전배 시스템 or 이직
(2)번 선택지는 2-3년을 버텨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도저히 제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싫었던 나는 팀 사람들과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될 (1)번 선택지를 결심했고, 다음 날 팀장님께 면담을 신청하여 내 상황을 오픈했다.
하지만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간다면 난 이미 요트 위에서 놀고 있었겠지.
멘토님과는 다르게,
'야, 제조업이든 뭐든 뭔 상관이야. 일 해보지도 않았잖아.',
'팀 사람들이랑 좀 더 이야기해보고 그래도 마음이 안 바뀌면 다시 말해.' 등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다른 팀 분들과도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아, 여기 있으면 개발자로의 인생은 절단 나겠다'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고,
다시 면담을 신청하여 결국 팀장님 손을 떠나 인사팀으로 사안이 넘어가게 되었다.
채용 담당자였던 인사팀 분도 이 상황을 알게 되었고,
내가 인사팀 높은 분과의 면담을 진행하고 나면 아마 팀이 바뀔 것 같다는 긍정적인 예측을 해주셔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그분과의 면담만 기다렸다.
그 분 별명이 '인사팀 저승사자'인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면담 당일, 퇴근 후 회사 옆 건물 스타벅스에서 만나 앉자마자 아래 첫 멘트를 꺼내시며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인: '혹시 팀에서 누가 괴롭히거나 희롱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나요?'
나: '예? 아뇨, 절대 그런 일은 아닙니다.'
인: '그럼 그냥 그 팀에 있으세요.'
나: '예?..'
인: '저는 솔직히 xxx님 팀장님이 요청하셔서 이 자리까지 나온 거긴 한데, 절대 바꿔줄 마음 없이 나왔어요. 그쪽 팀장님이 뭐라고 하셔도 저는 절대 안 바꿔줄 거예요.'
나: '아...'
인: 'xxx님이 팀을 꼭 바꿔야겠다? 그러면 이거 인사팀 임원한테 보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될지 알죠? 회사에서도 xxx님 평판 안 좋아질 거고, 그런 거 다 버틸 수 있겠어요?'
나: '알겠습니다. 그냥 다니겠습니다.'
ㅋㅋ 지금 다시 쓰면서도 울컥하네; 신입사원이라 통할 만한 협박성 멘트인건가.
하여튼 저 면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팀 이동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취업한 지 두 달여만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부서 배치 후 팀 분들과 면담했을 때 한 분이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던 것을 다시 가슴에 새기며 이직할 회사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돈, 사람, 일.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나머지 둘을 압도할 만큼 좋다면 지금 회사에 계속 다니면 되는 거고, 아니면 이직을 하는 것이 맞다.'
SI/SM에서 서비스 회사로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인생은 운과 타이밍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백엔드 개발을 희망했지만 관련 프로젝트나 업무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공부하고 있는 이론 지식만으로는 경력직 기술 면접을 통과하기 어려웠다.
신입 공고에서는 이제는 손을 놔버린 코딩 테스트가 발목을 잡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직을 결심하고 어쩌다 알게 된 헤드 헌터 분께서 '엔터프라이즈 블록체인'이라는 한화에서 만든 스타트업을 추천해주셨다.
스타트업임에도 스프링 기반의 '요긱'이라는 자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
블록체인과 관련된 사업 및 서비스를 상당수 계획 중이고 진행할 것이라는 점,
시니어가 상당히 많고 구성원들 대부분이 흔히들 말하는 '네카라' 출신이라는 점,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도 '한화'라는 대기업이 뒤에 있다는 점 등 많은 부분에서 끌려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지원 자격에는 3년 차 이상의 백엔드 개발자를 요구해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기술 면접에서 면접관 분들이 내 연차와 상황을 고려하여 크게 어렵지 않은 질문들을 해주셨고,
내가 1년 여동안 꾸준히 블로그를 작성하며 혼자 공부해왔던 모습과,
이상하리만치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침착한 모습으로 답변했던 모습들을 좋게 봐주셨는지 1차 면접에 통과했다.
그 후, 2차 면접까지 진행하게 되었고 2021년 12월 31일에 아래와 같은 최종 합격 메일을 받았다.
사실 회고록보다는 이직기에 가까운 듯싶다.
2022년 회고록에는 이것보다 더 개발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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